눈은 몸의 등불이니
고속도로를 운전해 본 적이 있는가? 필자가 처음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옆에 있는 물도 마시지 못했다. 한순간도 전방을 주시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운전하면서 음료수를 자유롭게 마시며 휴대폰을 조작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방 주시의 의무는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운전하는 시간만큼 깨어있는 시간은 없을 것이며, 운전하는 시간만큼 눈과 손과 발이 혼연일체가 되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눈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6:22,23)
눈은 우리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눈이 역할을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눈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일상의 많은 부분이 제한된다.
야생동물이라면 사냥도 불가능하고 포식자의 공격을 피할 수도 없게 되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사람은 이 정도는 아니어도 남의 도움의 없이는 역시나 생존이 불가능하게 된다. 도움을 받더라도 큰 제한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생의 밝음과 어둠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눈은 보는 것이다. 특별히 영적으로 거듭난 신자들의 눈은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이다. 성령이 주시는 영적인 눈이다.
이를 헬라어 원어로 분석하면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라고 할 수 있다. 메타노이아는 '마음(νοῦς)을 넘어서(μετά)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단순히 감정적인 후회를 넘어선 근본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전환을 포함한다. 이러한 메타노이아는 마치 마음의 눈과 같이 작용하여, 우리가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마음의 눈이 성하면 우리의 영적인 삶 전체가 밝아지지만,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면 영적인 분별력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삶을 돌이킨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길 삼아 하나님 아버지께로 달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는 마치 고속도로를 주행하며 목적지까지 가는 운전자와 같다.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우리는 수많은 이정표들과 갈림길들을 만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눈의 역할이다. 고속도로를 운전을 하는 데 있어서 눈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인생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드라이버들이다. 승객으로 아버지의 집에 가는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한번 고속도로에 들어섰다고 삶이 결판이 난 것이 결코 아니다. 본 게임은 이제 부터인 것이다. 메타노이아는 한 번 돌이켰다고 그 역할이 끝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집에 도달하기까지 운전자의 눈의 역할이 남아 있는 것이다. 메타노이아, 즉 마음을 살피는 영적인 눈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인도하는 능력이다.
긴 시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길을 달려왔는데 어느새 아버지 집이 가까이 보이는 지점까지 왔다. 그런데 이 지점의 이정표는 요한계시록이라고 쓰여 있다.
계시록이라는 지점은 이정표가 복잡하며 분명치 않는 생소한 길이다. 이러한 곳에서는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메타노이아의 눈을 바짝 뜨고 조심스럽게 통과해야 할 줄 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시력이 약해져 있다면 요한계시록의 권면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
영의 눈의 시력을 회복할 안약이 무엇인가?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안약은 회개이다. 회개가 메타노이아, 즉 마음을 살피는 눈이다. 회개하면 마음이 청결해지고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더불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메타노이아의 시력, 즉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들은 저 높이 보이는 아버지의 집이 보일 것이다. 세상에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곳이 많으나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곳이 하나님의 보좌가 아닌가? 혼돈과 유혹이 많은 때가 종말의 때이다. 서로 다른 이정표가 운전자를 현혹시키는 지점이다. 이때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6:22,23)
신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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